2011/12/07 04:09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  일상

경제학사를 취득하는 전공을 하고 있으나. 
전혀 딴판으로 인문학을 부전공 하는 특이한 부류인 청년이다. 

그 쪽 학과 학생들은 왜 경상계열 애가 자신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을거다. 
취업난에 가장 허덕이는 학과 수업에 그나마 문과계열 중 취업 잘 되는 경상대 애가 와서 신나게 듣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이상할만도 했다.

게다가 난 좋아서 들어왔으니, 교수님들 눈에도 좋게 나고 덩달아 수업도 열심히 들으니 성적이 잘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재밌게 듣는데 성적이 개판일리는 없잖아.)

한 학기 분의 강의를 다 끝내고 교수님이 책걸이를 하셨다.
주꾸미 집에서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감자탕집에 두런두런 앉아 현 시대의 슬픔을 한창 이야기하던 때였다. 

한 두세 학번 아래였을 거다. 아마도. 벌겋게 술이 오른 그는 내 옆자리로 오더니 술을 한 잔 따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형. 한 잔 해요."
"아, 네. 반갑습니다."

가볍게 소주잔을 비웠다. 
토론 위주의 수업이어서 말은 꽤 많이 섞은 사이었다. 논쟁도 꽤 많이 했던 수업이라 얼굴은 분명히 기억하는 아이였다. 

"아, 지난 번에 발표 참 좋았어요. 재밌더라고요."
"아, 뭐 까이기만 했는데요. 형꺼는 주제가 확실히 딱딱하긴 하더라고요. 뭔가 계산적이고 치밀하달까?"
"그래요? 아무래도 과가 경상쪽이니까 좀 분석적이고 그런 건 있겠죠. 습관이 들긴 했으니까."
"좋겠어요. 피드백 주고 받을 때도 형은 진짜 딱딱 논리적이더라고요."
"무슨.. 그냥 듣고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하는 건데요, 뭐.."

아마 그들의 눈에는 내가 학점 뺏어가는 존재로 비춰졌을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는 했다. 

"근데, 형 그거 알아요? 형 좀.. 이런 말 그렇긴한데.."
"뭐요? 말해요, 그냥. 어차피 수업 다 끝났는데."
"술도 먹었으니까 그냥 넘겨들으세요. 애들이랑 그냥 형 좀 너무 척한다고.. 뭐 그런다고요."

그래. 이해는 했다니깐.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아, 그래요? 근데 그거 알아요? 지금 그 쪽 좀 건방진 거. 하핫. 뭐 그냥 넘겨들으세요. 마셔요. 자."

나는 얼굴이 발갛게 오른 그 후배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소주를 철철 넘치도록 다시 따랐다. 

"쭉. 그렇지. 잘 마신다! 자, 한 잔 더!"

나는 그를 잡아앉히고 계속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만에 다이다이 술 귀신 악마가 부활한 날이었다.


덧글

  • 2011/12/07 06: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청년 2011/12/07 10:09 #

    자기과 선배였으면 이러지 않았겠지 싶어서 아예 기를 꺽어버렸어요.
    덕택에 제 몸 상태도 무리가 왔지만.
    제겐 에너지 음료가 있으니까!! :D
  • 화호 2011/12/07 09:31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속시원하네 잘하셨어요!!! 어디서 술 먹은 핑계로 와가지곤 그따위 이야기 꺼내가며 사람 상처입히려고... 아주 악질이네요.

    솔직히 청년님이 학점 뺏어간다고 미워하면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요-_- 전공이고 뭐고 일단 열려있으니까 타과생도 와서 들을 수 있는 거고(부전공이어도), 타과생이 와서 잘하는 것 같음 그거 아니꼽게 생각할게 아니라 타과생이 탑 먹을 정도의 실력을 감탄하고 그 과에서 자기네 실력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걸 반성해야된다고 생각해요. 막말로 자기네 홈그라운드인 건데...-_-
  • 청년 2011/12/07 10:17 #

    군대 다녀오고 얼마 안되서 세상이 자기들 껀 줄 아는 시기가 있죠. 아마 그 녀석들 무리가 딱 그 시기였을 거에요.

    인문학 쪽이 워낙 자기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한 건 맞는데(그들에게도 일종의 자기방어 혹은 자격지심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있더라고요), 텃세는 정도껏 해야죠.

    사실 부전공 학점만 평점 내보면 4.0이 넘어서..; 좀 미안한 감은 있어요;
    그래도 역시 좋아서 하는 게 최고이긴 한듯 합니다. 성적이 증명해주잖아요. 하핫;

  • 화호 2011/12/07 10:58 #

    ㅋㅋㅋ 저는 좋아하지도 않는 경영학과를 취업을 위해 이중전공했더니 그게 제 GPA 다 깎아먹어섴ㅋㅋㅋㅋㅋ 생전 없던 C랑 D 가 여기서 작렬했어요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 사람이 역시 좋아하는 거 해야된다니까요....ㅇ<-<
  • 청년 2011/12/07 15:01 #

    씨는 그렇다쳐도.. 디는... 크...
    제가 다 눙물이... 흙!

    그래도 이미 취업자이시니! 승자입니다!! :D
  • 2011/12/07 12: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청년 2011/12/07 14:58 #

    수업에서 척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죠, 사실. 토론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려면 당연히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건데.. 큭
    아마 그 무리들 몇이 꼬여먹어서 그렇게 생각했을거에요. 다른 사람들과는 기분 좋게 먹었습니다, 그래도. ㅋ

    그나저나 친구분도 용자시네요. ㅋㅋ
  • 봄날 2011/12/07 14:17 # 답글

    ㅋㅋㅋ국문과 복전생으로서 매우 속씨원하네요ㅋㅋㅋㅋ
  • 청년 2011/12/07 15:00 #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뭉치고 좀 뭐랄까. 없잖아 배격하는 느낌이 있긴 하죠. 쩝.

    제 전공 수업은 수 많은 타과생들이 넘쳐나는지라 다 잘 지냈는데 말이죠. 하핫;
  • 정수친구 2011/12/07 15:38 # 답글

    문득 대학생 시절이 다시 그리워 지는 군요. ㅎㅎ
    역시 공부던 일이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나봐요~
  • 청년 2011/12/07 18:18 #

    근데 좋아하는 일만 찾아하다간 베짱이가 될.. 저도 어서 대학시절이 그리운 시기가오면 좋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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