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4 00:43

넌 왜 연애를 안하니? 생각 중


누나와 알게 된 지가 한 이 년여쯤 됐을 거다.
현주누나는 친구였던 경진이 소개로 알게 된 지인이었다.
나와 독서취향 및 음악적 관심사 등이 굉장히 닮아서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누나는 나를 항상 예쁘게 봐줬다.
"청년이 넌 진짜 내가 우리 남편만 없었다면 꼬시고도 남았을거야." 라던가 
"아이구, 오늘 정말 예쁘네. 왜 이렇게 예뻐!" 식의 말을 늘 해주는 몇 안되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얼마 전 누나와 오랜만에 만나서 서울 시내를 돌며 구경을 다녔다.
그리고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누난 나에게 물었다.

"청년이 너 왜 연애를 안해??"
"응?? 안하는게 아니지.. 나 아직 학생이잖아요."
"넌 진짜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만, 아무나 주기는 좀 너무 아깝다."
"그러게 왜 그리 빨리 유부녀가 됐어요, 누나! 크크크"
"우리 알고 지낸지 꽤 됐는데 누구 만난다는 소리가 없어서 걱정되더라고. 누나가 아는 동생들 해줄까?"
"됐어요. 나 소개팅 싫어해. 게다가 지금 내 처지가 학생으로 위장한 백수잖아.."
"외롭지 않아?"
"외롭기 보다는 그냥 좀 심심하달까?"
"시간 아깝다~ 나이 먹으면 연애 편하게 못해! 아무나 확 만나서 좀 놀아, 청년아~"
"노는 건 알아서 잘 하고 다닙니다. 푸하핫! 아! 옛날 잭나이트 자리에 헬리우스 옮겼어요! 물 좋대요. 하핫!"
.
.

누나의 걱정에 나는 혼자 지레 겁을 먹었다. 혹여나 다른 이야기가 나올까 섬찟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한 말인데.
나는 그 말이 잔가시가 목에 걸리듯 불편했다.

훗날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는 대부분 주변 지인들에게 연애 사실을 밝히진 못할 거다.
그럴 용기도, 아니 그럴 생각도 없다. 커밍아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이 중 하나이니까.
주변에만 힘들게 뱉은 커밍아웃이 언젠가는 커지고 커져서 결국은 아웃팅이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그리고 사람의 혀는 가볍고 길쭉하다.


누나. 나는 아마 누나에게 최소한 몇 년은 더 연애한다는 소리 못할 거에요..




덧글

  • 명품추리닝 2011/12/04 01:07 # 답글

    사람의 혀는 가볍고 길다... 정말 무섭고도 슬픈 진실이죠.
    다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사실을 말하고 공감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큰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안목도 길러야 하겠죠. 그런 사람이 가족이면 더할 나위 없고요.
    청년 님도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청년 2011/12/04 12:25 #

    사체를 보면 혀의 길이가 실제론 엄청나게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성 정체성 부분에 대한 커밍아웃 만큼은 예외인 것 같아요.

    아직 세상은 편견이 득실거리거든요..
  • 정수친구 2011/12/04 10:53 # 답글

    글을 읽다보니...공감도 되고 비슷한 경험도 있으시고..ㅎ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읽고 그냥 갈까 하다가....흔적 남기면 힘이라도 될까 해서..ㅎㅎ

    자주 놀러 올께요~

  • 청년 2011/12/04 12:26 #

    흔적, 힘이 되고 말고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VIN 2011/12/04 12:22 # 답글

    돈이 없어서 안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뭘
  • 청년 2011/12/04 12:26 #

    저.. 사실.. 돈도 없어요 ㅋㅋ
  • 꼬꼬덕 2011/12/05 15:47 # 답글

    심하게 공감되네요. 휴 저도 좀만 이제 나이 들면 부모님, 동생들 다 이상하게 생각할듯 ㅠㅠ
  • 청년 2011/12/05 19:35 #

    전부터 알던 애들은 예전에 여자친구 많이 데리고 갔던 터라 괜찮은데..
    근래에 만난 지인들이 문제에요, 전.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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