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6 03:25

난 너도 걔 안봤으면 좋겠다.  생각 중



한준이에게 그 말을 한 날은 술에 잔뜩 취한 저녁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후배와 술을 마시다가 한 반 년만에 단골 술집을 찾아갔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십 년을 다닌 술집이라 이모들과는 완전히 친한 곳이다. 오랜만의 방문에 이모들은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아이고, 우리 청년이 왔어! 이게 얼마만이야~"
"어, 이모 미안.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무릎 괜찮고? 진명이모는?"
"주사 맞아서 괜찮아. 어떻게 졸업 이 번에 하는거야?"
"모르겠어.. 으흐.. 이모, 우리 배고파요. 일단 먹을 것부터 주문 좀 할게."

여전히 나를 반기며 예뻐해주는 이모들이 좋았다.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만큼 편안한 단골 술집이 여전히 있다는 건 꽤 큰 메리트니까. 
후배와 술을 마시며 과거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에 빠지고 있을 무렵 진명이모가 찾아왔다. 

"하이고, 청년아!"
"어? 진명이모! 살 빠졌다!! 뭐야, 뭐 고생했어요? 뭐야, 아들들 뭐한대."
"아냐, 이모가 몸이 무거워 살 좀 뺀 거야. 니가 이제 스물 여덟이냐, 일곱이냐?"
"일곱.. 크흑.. 벌써 일곱이요.."
"하이고, 너도 이제 장개간다 소리 하겠다. 용석이랑은 뭐하고 지내? 한준이는 지난 번에 한 번 왔는데."
"이모 나 용석이 안봐. 뒷통수 맞았어. 하아.."
"뭐야? 이런 용석이 그게 나쁜 새끼고만. 이사가곤 몇 년째 한 번을 안오더라. 못쓰겠네. 언니! 청년이 용석이랑 안본데!"
"냅둬! 청년이만 오면 돼!"

주방으로부터 들려오는 금화이모의 외침에 우린 모두 까무라치게 웃어제꼈다. 후배야 뭐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한 동안 친구때문에 힘들어했던 시기를 봤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처음 용석이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정신 못차렸을때 가장 먼저 연락을 했던 건 당연히 한준이었다. 그리고 그 때 한준이가 했던 대답이 기억에 남았다. 

"청년이 너도 이해되고, 용석이도 이해는 되는데... 이 자식 미쳤다..."

단골 술집엔 우리 셋의 추억이 잔뜩 묻어있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던 때 용석이와 한준이 둘이 와서 내게 남겨둔 작은 응원이라던가. 처음 이별에 울고 있던 용석을 위로해준 벽에 쓴 뻘줌한 위로 편지라던가와 같은 낙서들. 심지어 폴라로이드를 들고와서 이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아직까지 냉장고에 붙어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후배를 집으로 보내고 돌아서는데, 자꾸만 한준이의 말이 떠올랐다. '용석이도 이해가 된다..'던 그 말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집으로 향하던 택시를 돌렸다. 그리고 한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자냐?"
"어, 지금 누우려고. 이 시간에 왜?"
"잠깐 나와라."
"안돼~ 내일 출근해야지."
"너네 집 앞으로 갈께. 뭐 좀 물어볼려고."
"그래? 그럼 알았어."

한준이네 아파트 앞 슈퍼에서 한 오분여를 기다렸을까. 
'청년아!'를 외치며 뛰어오는 한준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녀석을 꽉 끌어안았다. 

"야, 너 고기 먹어. 히야가 쏜다잉."
"뭐야, 너 술 많이 마셨어?"
"어, 쫌. 한 세 병?"
"근데 생각보다 괜찮네?"
"됐고. 고기 먹어. 형 오늘 돈 받았다."
"그럼 후문 쪽으로 나가자."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던 한준이가 귀여웠다. 오랜만에 어깨동무를 하고 흥얼거리며 고기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이블엔 차돌박이 삼인분과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이 놓여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위한 핫식스 한 캔도 함께 올려졌다. 

"일단 마셔. 고기 많이 먹고."
"뭐 고기는 좋으니까!"

시원하게 술 잔이 비워지고 난 한준에게 그동안 참았던 말을 물었다. 

"내가 예전부터 마음에 남아서 묻는거야. 그 때 니가 용석이도 이해가 된다는 그 부분이 대체 뭐냐? 내가 용석이한테 뒷통수 맞을 만하게 나빴냐."
"어?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괜찮아. 나도 내 승질 나쁘고 그 정도는 다 알아..."
"아니, 청년아.. 내가 말한 건 너 희서하고 다퉜을 때도 그렇고. 너무 맺고 끊는 거 확실하고, 좀 냉정해지고 차가워지고...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너 진짜 싸가지없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어.. 근데 막상 너한테 뭐라고 못하는 건 니가 그냥 그러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잘못한 걸 아니까.. 그러니까 용석이도 그런 거였어. 그래서 이해는 된다고 했던 거야."
"근데 걘 너한테 그렇게 꾸준히 내 욕을 그렇게 한 거냐? 그래놓고 술은 왜 처먹고 나랑 화해는 하려던 거냐. 그리고 적어도 친구였으면 그딴식으론 행동하지 말아야지."
"나도 그런 것 때문에 엄청 뭐라고 했어.. 미친 놈이라고 욕도 하고.. 근데 말을 안들어쳐먹어... 나도 요즘 걔 보는 거 불편하더라고."
"우리 누나가 뭐라는지 아냐. 괘씸하댄다."
"그러시겠지... 너네 누나가 얼마나 잘 해주셨는데.."
"나보다 누나가 더 상처를 크게 받았어.. 썅..."
"휴.. 내가 막 미안하고 그렇네.."
"몰라.. 넌 그 새끼 어떻게 계속 보냐.. 사실 너한테 용석이 얘기 한 번도 안 한 이유가. 걔 얘기하면 나 너한테 이럴 거 같았거든. 더럽게 치사하지만. 너도 그 개새끼 보지 말라고."
"푸하하핫.. 청년이 너도 애같이 굴 때가 있긴 하구나.!"
"몰라.. 난 너도 걔 안봤으면 좋겠다.."
"술 먹어, 자식아~"
"형이 너한테 얼마나 잘하냐~ 썅."
"나도 생각 되게 많았어. 그래도 용석이 보단 니가 더 나한테는 편한 사람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은 정말 용석이 잘못이고. 그래서 니가 죽었다 깨도, 그 자식이 빌어도 안봐줄거란 것도 잘 알아.. 알잖아, 나 복잡한 일 생기면 생각안하는거.. 암튼 그럼 너 나한테 서운한 건 다 풀린거지?"
"아니. 이번 달 월급 들어오면 한우 쏴. 이 새낀 히야한테 월급 턱 한 번을 제대로 안내! 콱!"
"크키키킥! 알았어! 마셔!"

술 잔은 계속해서 비워졌고 정신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술에 취한 나는 한준에게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다 내뱉었고, 음담패설까지 함께 즐겨나가다가 결국 난 필름이 끊어진 채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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